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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 41,55-57;42,5-7ㄱ.17-24ㄱ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68
작성일 09-07-21 11:06

창세 41,55-57;42,5-7.17-24

요셉은 형들을 보자 곧 알아보았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며 그들에게 매몰차게 말하면서 물었다. (42,7)

 

오늘 독서에서 요셉은 형들을 매몰차게 대합니다. 게다가 오늘 전례 독서에서 생략되어 있는 9절에서 15절을 보면 요셉은 자기 형들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간첩으로 몹니다. 그러면 이 요셉의 거친 말과 간첩이라는 고발은 과거에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이집트로 팔아 버린 형들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에서 나온 것일까요? 만일 그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기가 가진 권한으로 형들을 당장 사형에 처하거나 적어도 형들에게 식량을 주지 않고 그대로 돌려 보내 굶어 죽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이전에 이미 형들을 마음으로 용서했습니다. 그 징표가 바로 자기 아들의 이름을 므나쎄 곧 하느님께서 나의 온갖 쓰라림과 아버지의 집 생각을 잊게 하셨다라고 지은 데서 나타납니다. 이 이름의 뜻은 자기에게 행한 형들의 행위를 기억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체험에서 겪었던 상처와 아픔을 잊어 버려 더 이상 한을 품고 있지 않다는 요셉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마음, 자신의 한에 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된 마음에서 용서가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알아보면서도 남을 대하듯이 거칠게 대하였다라는 보도는 화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보도입니다. 요셉은 하느님을 늘 경외하며 살아온 사람이어서 형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용서가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곧바로 드러내면서 형님들을 용서합니다.”하지 않고 가혹하게 대했던 것은 바로 형들이 자기들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진정으로 통회하며 용서를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를 체험할 수 없으며 설령 자기 죄를 인식하더라도 통회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를 체험할 수 없으며 통회의 정도에 따라 용서를 체험하는 정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요셉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셉의 거친 태도는 형들의 마비된 양심을 일깨워 놓아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게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라고 말하면서 회개의 첫 번째 단계인 잘못에 대한 인정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요셉은 형들과의 화해가 가능하게 됨을 보고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입장을 약간 바꿔서 형들의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형들은 식량이 없는 곤궁에 처해 있고 그래서 가나안에서 이집트까지의 500km라는 장거리 여행에 몸과 마음도 지쳐 있는 상태에 그나마 한줄기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이집트에서의 식량 구입에서 예상치 않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식량 판매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집트 재상 요셉에게서 모진 대접을 받고 간첩이라 의심을 받아 사흘 동안 감옥에 갇혔으며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이 먼 이국 땅에서 오랫동안 감옥에 남아 있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움 앞에서 그들 모두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요셉이 잔인한 사람,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선을 위해서, 형제들 사이의 올바른 화해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그의 사랑의 마음을 도무지 알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도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방법이 거칠고 모질 때가 있는데 우리는 그 거칠고 모진 것에만 시선을 두고 하느님의 선한 의도를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 이런 하느님의 방법이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으로 인해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히브 12,11) 또한 시련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로 대하는 표징으로 보라고도 초대하고 있습니다. (히브 12,7) 내게 주어지는 크고 작은 불쾌한 일들, 아픔들, 어려움들, 그것들을 당장의 싫음만을 부각시키며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랑이신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감사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관리자
성바오로 수도회 김태훈 리푸죠 수사님께서
스승예수의 제자 수녀회에 복음 묵상 내용을 보내주신다고 해서 저희도 같이 청했습니다.
말씀 이해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09-07-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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