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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한국 천주교회사 - 4. 종교자유(신앙자유)와 그 이후의 교회 역사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81
작성일 09-08-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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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종교자유(신앙자유)와 그 이후의 교회 역사

      파리외방전교회 주교회의
      1882년 미국을 선두로 하여 잇달아 체결된 구미열강들과의 조약, 특히 1886년의 프랑스와의 조약은 불완전하나마 조선에 처음으로 종교자유를 갖다주었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교회는 박해의 깊은 상처를 씻고 복음화에 매진 하였다. 비밀리에 원주 부흥골에 두었던 신학교가 1887년 용산으로 옮겨와서 용산신학교가 생겨났으며, 1888년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고아, 병자, 노인들에게 구제사업을 벌렸다. 수녀회의 사업은 한국에서 최초의 사회사업이었다. 1898년에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교우들이 모임을 가졌던 명례방 김범우의 집터에 명동성당이 완공 축성되었다.
      명동 대성당과 위돌(박)신부(본 성당의 건축을 설계건축한 분은 요한 고신부였고, 고신부가 별세한 후에는 위돌(박)신부가 남은 내부 공사를 마치어 1892년 정초식을 거행한 이래 6년만인 1898년 5월 29일에 축성식을 올리었다) 신축된 명동성당
      1906년에는 경향신문이 창간되었고, 1907년에는 경향잡지가 창간되었으며, 1908년에는 뮈델주교의 초빙으로 독일계의 성 분도회 수사들이 입국하여 수도원과 신학교를 설립해서 교육사업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후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고 일제시대에 들어와서는 교회행정이나 교구장 임명 등 신앙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인 박해를 받았다. 1950년 6.25동란을 겪으면서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정권에 의해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학살당했으며, 이북은 침묵의 교회로 급변하였다. 교회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선교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1925년에는 순교자 79위 가 복자위에 올랐고, 1968년에는 24위가 복자 위에 올라 선조들의 흘린 피가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70년에 들어와서 한국의 천주교는 사회복지화에 힘써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데 노력했다. 1980년대 들어와서는 각종 기념 행사를 치른 시기이다. 81년 조선교구창설 150주년을, 84년에는 한국 천주교 탆생 2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한국천주교회 200년. 4000년의 역사전통이 자리잡은 땅, 순교자의 피가 스며든 거룩한 땅, 겨레의 한과 슬픔이 서리고, 긍지와 희망이 꿈튼 이 땅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입을 맞추고 있다.(1984.5.)
      또한 103인 복자들이 성인품에 오름으로써 세계에서 제 4위의 성인 보유국이 되었다. 89년에는 제 44차 세계성체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함으로써 교회의 쇄신의 내실화를 다졌고, 90년에는 신앙쇄신과 사회복음화를 위해 각종 운동, 즉 "한마음 한몸운동", "내탓이오 운동", "환경보호 운동"등을 통해 인류공동체 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선교 300년을 향해서 선조들의 신앙자세를 본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참된 신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사명을 힘차게 살아가고자 한다. (*1839년의 박해와 1846년의 박해로 순교한 79명은 1925년 로마에서 복자로 선포, 1866년의 박해로 순교한 24명은 1968년 로마에서 복자로 선포. 이렇게 해서 103인 복자는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품에 올랐다. 수차례의 박해로 순교한 분은 1만여명이나 된다. 전부가 기록되지 않았음이 안타깝지만 103인으로 대표되는 성인들에 의해서 1만여명의 순교자들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교구 설정이 1831년 이었기 때문에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분들과 그 이전에 순교한 신앙선조들에 관한 사실들은 중국교구에 속해있던 시기라 순교자료 등을 공식적으로 교황청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성인품에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교구설정 이전에 순교한 선조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자료를 수집하여 순교성인으로 교황청에 추천하고 있습니다. (*시성,시복 : 성덕이 높은 분들을 사망 후 성인이나 복자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을 말한다. 옛부터 성덕이 높은 분들을 하느님께서 그분들과 관련하여 기적을 나타내 주신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성덕에 대한 여론이 많고, 그분을 통해 기적이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많으면, 해당 주교는 그분의 연행, 저서, 기적 등을 엄밀히 조사하여 교황청에 보고한다. 교황청에서는 엄격한 조사를 하고 자료를 검토한 후 추진할 만 하다고 인정이 되면 교황에게 보고한다. 그리하여 기적에 대한 검사, 조사, 재판을 거쳐 인정이 되면 "복자"로 선언하다. 다음에 그 복자를 통하여 진실한 기적이 2가지 이상 일어날때 같은 조사를 하여 성인으로 전세계에 교황이 선언하고 의식을 거행하는데, 이를 "시성"이라 한다. 순교자는 기적의 확실성 여부의 재판이 필요없다. 복자는 그 공경이 어떤 지방이나 단체에 한하나, 성인은 전 세계 어디서나 누구든지 공경하게 된다. 성인성녀의 축일은 사망한 날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정하여 그분의 축일을 본명축일로 지내게 된다. 성인성녀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정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신앙자세를 본받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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