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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한국 천주교회사 - 6) 철종시대의 교회(1849~1864)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872
작성일 09-08-1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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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철종시대의 교회(1849~1864)

      (1) 교회의 평화 1849년에 국왕 헌종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김씨는 몰락한 왕족에서 18세의 소년을 왕위 계승자로 선정하였는데 그가 철종이다. 그런데 그의 조모와 백모는 한양에서 살면서 천주교에 입교하여 1801년에 주문모 신부의 은신처를 제공한 혐의로 사약을 받았다. 이러한 국왕의 가정 배경과 섭정하던 대왕대비 김씨의 천주교에 대한 온건 정책으로 교회는 어느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엇다. 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금압 정책이 완전히 철회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정치 변동과 관리의 개인적 적의에서 교회는 박해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1857년 8월에 천주교를 묵인하던 순원왕후가 승하하자 천주교 탄압을 요구 하는 상소문이 나오기 시작하고 같은 해 말경에는 외교인의 밀고로 신자들이 체포하기도 하였다. 또한 1860년 초에 포도대장이 천주교에 대한 증오심과 신자들의 재산에 대한 욕심으로 경신박해를 일으켰으나 그의 박해 정책이 환영받지 못한 것을 알아 사임하고 그 후임자는 구금된 신자들을 석방하였다. 오히려 1861년에는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북경 함락(1860년 10월) 소식이 들려오자 서양인의 침입과 피해를 걱정한 일부 관리들은 천주교인들에게 보호 를 부탁하였다. 또 포졸들은 교우들의 모임에 나타나 지난날의 체포, 고문한 행위를 변명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교회는 잠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위정 당국 의 묵인으로 부분적 평화를 누리면서 보다 많은 성직자들의 입국과 활발한 교회 활동을 통해 교세를 발전시켰다.
      1864년에 간행된 천주교 서적
      1864년에 간행된 천주교 서적.
      치열한 박해속에서도 신앙의 선포는 중단될 수 없는 법, 목판에 글을 새겨
      책을 만들어 진리에 목말라하는 모든 이에게 이를 전했다.
      (2) 성직자의 입국 1849년 최양업 신부가 귀국하여 병오박해의 희생에서 벗어난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신자들을 돌보았다. 이 때 다블뤼 신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주로 신학생을 양성하는일을 맡았다. 1852년에 매스뜨르 신부가 입국 하여 병중에 있는 주교를 대신하여 사목에 종사하고 1853년 2월 페레올 주교 가 서거하자 부주교로서 교회 책임자가 되었다. 1854년 3월 쟝수 신부가 입국하였지만 석달 만에 뇌염으로 별세하였다. 그 동안에 만주에서 활동하던 베르뇌 신부가 1854년 12월 제 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쁘띠니꼴라와 뿌르띠에 신부와 함께 1856년 3월 한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1년 후인 1857년 3월에 페롱 신부가 잠입에 성공하여 이제 조선 교회 는 7명의 성직자를 보유하였으나 특수사목과 건강상 휴양 중인 신부를 제외 하고는 4명의 신부만이 신자 사목을 담당하였다. 더욱이 1859년 12월 매스뜨르 신부가 병사한 후로는 선교사의 보충이 절실 하였다. 따라서 베르뇌 주교는 파리 외방 전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성직자의 파견을 간청하였다. 이러한 요청의 결과 랑드르 신부, 죠안노신부, 리델 신부, 깔래 신부 등 4명의 선교사가 1861년 4월 입국하여 조선의 성직자는 10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2개월 후에 최양업 신부가 사망하고 1863년에는 죠안노 신부와 랑드르 신부가 병사하였다. 다만 같은 해 6월 오매뜨르 신부 가 입국하여 부족한 성직자 수를 보충하였다.
      (3) 최양업 신부 최양업은 충청도 홍주지방의 다래골에서 최영환(프란치스꼬)과 이성례 (마리아)의 맏이로 태어나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하였다. 그의 아버지 최영환은 매일 집에서 정해진 시간에 자녀들을 모아놓고 영적 독서, 묵상과 기도의 생활을 하였으며 신앙을 증거한 집안 순교자들의 이야기 를 들려 주었다. 그는 모방 신부에게 간택되어 최방제와 김대건보다 먼저 1836년 2월 성소 지망자로 뽑혀 두 동료와 함께 중국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1837년 6월 마카오 에 도착하였다. 그는 몽고 팔가자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중에 기해대박해와 부모의 순교 소식을 듣고서 자신도 함께 순교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와하는 심정을 후에 르그레조아 신부에게 편지로 토로한다. 최 토마스는 팔가자에서 김대건과 신학 공부에 열중하였고 1844년에 사제서품 받기에 필요한 신학 지식과 신심을 갖추었으나 법정나이인 24세에 이르지 못해 부제품만 받게 된다. 1845년 1월 김대건 부제가 귀국한 후에 그도 입국의 기회를 엿보지만 세 차례 에 걸친 입국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849년 부활 대축일에 최 토마스 부제는 사제서품을 받고 요동 지방으로 가서 조선 입국의 기회를 기다리며 사목실습을 하다 12월 한양으로 잠입한다. 한양에 도착한 최 신부는 병중의 다블뤼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베풀고 충청도 에 있던 페레올 주교를 방문하여 인사를 드린 후에 사목활동에 착수하여 6개월 동안 전국의 교우촌을 순회하면서 외교인의 고발을 받아 체포의 위험도 겪지만 철종의 즉위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완화되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있었다. 그는 사목활동 외에 교회사 자료를 수집, 라틴어로 번역하여 후에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가 발간 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기도서인 ‘성교공과’와 교리서를 번역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페레올 주교가 불어로 기록한 ‘기해일기’, ‘병오일기’를 리틴어롤 번역하여 오늘날 교회사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한글을 모르는 어린이와 부녀자를 위해 ‘천주가사’를 저술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천주가사는 ‘사향가’,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등이다. 사향가는 영원한 본향인 천당을 생각하여 부른 노래이다. 일부 인용하면 “어화 벗님네야 우리 본향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 곳이 본향 인고. 복지로 가자하니 무수성인 못들었고, 지당으로 가자하니 아담원조 내쳤고나. 부귀영화 얻었은들 몇 해까지 즐기오며 빈궁재화 많다한들 몇 해까지 근심하리. 이렇듯한 풍진세계 안거할 곳 아니로다. 가련하다 세상 사람 난 사람은 다 죽는다. 온 천하에 많은 사람 백 년 전에 모두 죽네. 이렇듯이 헛된 세상 경영할 것 무엇인고. 죽을 곳에 가는 자가 희락영복 탐할쏘냐. 살고죽기 상합하여 서로 없지 못하리라. 예로부터 지금까지 죽잔 는 자 하나 없네. 예수성모 죽으셨네 우리 어찌 변할쏘냐….. 육신사욕 따르 다가 영혼길을 닦을쏘냐. 제일 원수 육신이오 더러운게 육신이라. 고신하고 극기하여 육신 먼저 이긴 후에 평생 성총얻어 선종함을 얻으리라” 고 노래하면서 영생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평안하고 침착한 선종을 맞을 수 있도록 영혼의 준비를 하였다. 조국 사목을 위해 이처럼 헌신한 최양업 신부는 사목활동 12년 만인 1861년 6월에 주교의 업무를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던 중에 급환으로 선종하였다. 최양업 신부는 거룩한 사제 직분을 준수하여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영혼 구원 에 힘썼던 목자로서 주교와 신부들의 기도 가운데 배론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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