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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한국 천주교회사 - 5) 병오박해(1846)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963
작성일 09-08-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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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병오박해(1846)

      (1) 김대건 신부 초기 생애와 입국 김대건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 지방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한문을 익히고 어머니 고 우르슬라에게서 종교 교육을 받았다. 그러던 중에 사목 방문으로 지방 순회에 나섰던 모방 신부의 눈에 띄어 15세의 나이에 예비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모방 신부와 한양에 올라온 그는 먼저 선발되어 있던 최방제, 최양업과 합류하여 한문과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836년 12월 김대건은 두 동료와 함께 귀국하는 유방제 신부를 따라 국경을 넘어 1837년 6월 마카오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 지부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세 명의 신학생들은 여러 역경 속에서 어학과 철학 과정을 끝내고 신학 공부에 들어갔다. 신학생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인 1842년 에리곤호 세실 제독의 통역으로 1차 조선 입국 시도를 했으나 함대가 조선 출동을 포기하여 성취되지 못한다. 에리곤호에서 하선한 김대건은 육로를 통하여 조선에 잠입 하기로 결정하고 요동지방 국경지방으로 떠났다. 거기서 김 프라치스꼬라는 교우를 만나 기해대박해와 성직자 영입 운동 소식을 듣고 자신이 먼저 입국 하여 매스뜨르 신부의 입국을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조선 잠입은 성공하나 한양으로 향하다가 부자연스런 언행으로 의심을 받아 1843년 1월 요동으로 돌아온다. 1843년 4월 몽고 팔가자로 옮겨 신학 공부를 계속하여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았다. 1845년 1월 김대건 부제는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중국 국경 지방에 도착하나 외국인 주교의 입국이 불가능하다는 안내교우들의 말을 듣고 혼자 들어가서 해로를 통한 입국로를 개척하기로 하고 압록강을 건너 한양에 도착 하였다. 실로 고국을 떠난지 근 10년 만의 귀국이요, 귀국길에 오른지 4년 만의 일 이었다. 그는 현석문이 마련한 집에 은신하면서 교회 사정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귀국 사실과 함께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땅 신부의 순교 사실 등을 파리 외방 전교회의 리보아 신부에게 보고하였다. 아울러 자기 귀국 사명인 성직자 영입 준비에 착수한 그는 서양 선교사의 편의를 위해 조선의 지도를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1845년 4월 30일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주교를 모시러 상해로 출발 하여 6월 4일 무사히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 17일에 김대건 부제는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서품을 받고 1주일 후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상해를 떠나 10월에 충청도 강경 지방의 황산포에 상륙하여 한양에 들어왔다. (2) 병오박해(1846년)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 신부에게 선교사의 입국을 위하여 해로를 개척할 것을 명한다. 그래서 김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서해안으로 나가 관리들의 감시망을 뚫고 백령도에 도착하여 주교의 편지와 조선 지도 등을 중국의 선원들에게 전달하고 황해도 순위도까지 무사히 돌아오지만 1846년 6월 5일 체포됨으로써 병오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는 40여 차례의 심문과 고문을 받으며 배교할 것을 강요받았다. 재판관들은 김대건 신부의 외국어 실력과 폭넓은 지식에 놀랐고 어떤 대신은 그에게 지리서 편술과 세계지도의 번역을 부탁하여 옥중에서 두 장의 지도를 채색하여 한 장은 국왕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재능으로 일부 대신 들은 김대건 신부를 위한 구명운동을 별여 그에 대한 판결이 3개월이나 연기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46년 6월 세실 제독이 세 척의 군함을 이끌고 나타나 기해대박해 중에 세 명의 선교사들을 처형한 것을 항의, 문책하자 조선 정부는 천주교와 김 신부에 대해 강경책을 취하게 된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최양업 신부에게 자기 어머니를 부탁하는 효심 을 보이고 교우들에게는 어떠한 유혹이나 시련에도 굴하지 말고 신앙을 굳게 지킬 것을 당부하는 ‘교우들 보아라’ 라는 편지인 ‘회유문’을 보내고 1846년 9월 15일에 국사범으로 군문효수의 사형선고를 받고 한강 새남터에 끌려 나왔다. 그는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였으니 여러분 내 말을 똑똑히 들으 십시오. 내가 외국인과 교섭한 것은 나의 하느님과 종교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으며 이제 내게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후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신봉하시오.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 입니다". 라고 말하고 형리의 주문대로 자세를 취해주기도 하였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깁대건 신부는 이렇게 2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시체는 40일이 지난 뒤에야 교우들이 간신히 거두어 미리내에 안장 할 수 있었다. 김대건 신부의 체포와 더불어 시작된 1846년의 박해를 ‘병오박해’라고 한다. 이 박해는 김 신부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남녀 교우 들의 체포에 그쳐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9명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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