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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한국 천주교회사 -(4)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활동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926
작성일 09-08-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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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4월 19일, 한국 최초의 성직자 주문모신부는
한강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하였다. 사형이 징행되려 할 즈음에
갑자기 큰바람이 불고 뇌성벽력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4)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활동
      
      
      1793년에 이르러 박해의 기운이 수그러들자 성직자를 모시는 계획을 다
      시 추진하여 북경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왕래한 윤유일을 중심으로 지황
      과 몇 명의 신자를 북경 밀사로 출발시킨다. 
      주문모 신부는 구베아 주교로부터 성무 수행을 위한 특권을 위임받고 1794년 2월에 조선으로 떠났지만 조선정부의 천주교 금압정책으로 10개월 을 기다려 12월23일에 지황과 함께 조선인으로 위장하여 입국, 다음 해 1월 초에 한양에 도착하였다. 주문모 신부는 최인길의 집에 여장을 풀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795년 성주간에는 성세와 보례를 집전하면서 필문필답을 통해 신자들의 죄의 고백도 들었다. 마침내 한국 천주교 역사상 이 땅의 신자들을 위한 최초의 미사 성제가 부활대축일에 감격스럽게 봉헌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목 생활 6개월 만에 그의 입국과 거처가 한영익 이라는 신 입교우를 통해 조정에 알려져 주 신부는 양반 가문의 여교우인 강완숙의 집에 피신하게 된다. 당시는 양반의 집은 관헌의 사찰과 수색을 받지 않았으며 더욱이 아녀자 가 주인인 집은 외간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는 고유한 관습이 있어 주 신 부가 머물기에는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주 신부는 순교할 때까지 6년 동안 강완숙의 집을 사목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주 신부의 입국이후 신자수는 6천명이 증가하여 1만 여명에 달했다.
      강완숙을 중심으로 한 여성 공동체
      주 신부는 사목활동 중에서 신자들의 교리교육과 영성 강화에 주력하였 다. 그는 언어의 장벽으로 필답을 통해 교리를 가르치고 영적 훈화와 성사를 집전하는 한편 교리서를 번역하거나 저술활동을 통해 사목활동에 열중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명도회’ 라는 평신도 단체를 설립하여 집회를 통해 교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얻고 신앙의 진리를 외교인에게 전파하도록 격려하였다. 명도회의 구성은 매우 엄격하였다. 신부가 직 접 매월의 주보 성인을 정해주고 사회자를 임명하였다. 회원의 근만(부지런함과 게으름) 여하에 따라 연말에 가서 입회가 허락되 거나 아니면 제명되었다. 서울에는 황사영의 집을 비롯 명도회가 열리는 곳이 여섯 군데가 있었고 회원은 보통 5~6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시기의 신앙생활은 무엇보다도 기도 중심적이었다. 신자들은 주일과 파공축일에 미사에 참례하거나 참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기도 와 묵상과 교리공부 등으로 하루를 거룩히 보냈다. 그들은 기도서나 심신 서를 더 좋아 했고 또 성인전을 좋아했다. 또한 조선교회의 순교자 전기 를 즐겨 읽었고 그들의 유해를 각별히 공경하였다. 1800년 6월 28일에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취하던 정조가 승하하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여 왕대비 김씨 정순왕후가 섭정하게 된다. 김씨는 정권을 잡자 정치적 보복으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때 에 주 신부는 또 한번 밀고의 대상이 되었지만, 다행히 밀고 사실을 미 리 알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수많는 신자들이 체포되고 신부의 은신처를 추궁받고 이에 불응 할 때에는 죽음을 당하자 주문모 신부는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희생된다 고 보고 자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신자들의 어려움이 해결되리라 믿고 귀국길에 오른다. "야고보! 너는 어디를 가고 있느냐? 목자가 양을 떠나 있으면 양들은 어떻게 되겠느냐?"잠시 중국으로 돌아가 몸을 피하고 다시 돌아오려 했던 주문모 야고보 신부.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토굴 속에 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꿈에 예수님을 뵈었구나. 나 혼자 살자고 이렇게 떠나는 것이 예수 님의 뜻이 아니었구나!" 주문모 신부는 자신의 행동이 천주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알게 되자 즉시 발길을 돌렸다. 그는 곧장 의금부로 향하였다. 포졸들은 주문모 신부의 앞을 막았다.
      "뉘시오! 무슨 일로 이 곳에 오셨소." "나는 당신들이 찾고 있는 중국인 신부요." 주문모 신부는 즉시 의금부사 앞으로 끌려갔다. "네가 중국인 주문모가 맞느냐?" "그렇소, 내가 바로 주문모 신부요. 내가 듣자 하니 당신들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죄한 이들을 무참히 죽인다고 들었소. 그래서 그들을 대신해서 내가 죽고자 이렇게 온 것이오." "너는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사학한 교설을 퍼뜨렸느냐?" "그것은 당신이 몰라서 하는 소리요. 천주를 믿는 사람 중에 사학한 사람 을 보기라도 했소?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참된 종교를 전하고 이 나라 백성들이 참 기쁨을 얻게 하기 위해서요." 주문모 신부는 천주교의 교리 를 설명하면서 천주교인들이 받아야되는 부당함을 항의하였다. 조정은 주 신부가 중국인이라는 점에서 외교상의 문제 때문에 격론이 일 어났으나 결국은 강경파들의 의견대로 그를 군법에 회부, 효수형에 처하 여 국민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깨워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주문 모 신부는 1801년 4월 19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길 잃은 양을 찾아 타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주문모 야고보 신부. 그는 새남터에서 죽기 전에 큰 소리로 군중들을 향하여 외쳤다. "나는 천주교를 위하여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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