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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22):바울로의 제3차 전도여행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478
작성일 09-06-24 10:08
♡  고린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다   ♡ 






고린토에서 아쏘로


아쏘는 하늘로 치솟은 절벽 위에 자리잡은 천연 요새이다. 지중해 연안 그리스. 로마 유적 중 성벽이 가장잘 보존되어 있다. 이쏘에서 가파른 절벽을 타고 한참 내려가면 자그마한 포구가 나온다.
사도 바울로가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에서 걸어와서 다시 배를 탄 곳이다. 기원전 4세기 아쏘의 군주는헤르미아스였는데 그는 플라톤에게서 배운 대로 여기에 이상적인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그리하여 기원전 348년 은사 플라톤이 서거하자, 동문 아리스토텔레스와 크세노크라테스를 아쏘로초빙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의 양녀와 결혼하고 여기에 3년 동안 철학당을 열었다.




(Assos: Harbor)







(Assos: Temple of Athena )


바울로는 58년 초에 고린토 교회로 가서 모처럼 석 달 가량 휴식하는 동안에(사도 20,3) 자신의 신앙관을총 정리하여 글로 썼다. 그것이 바로 로마 교우들에게로 보낸 로마서이다.
장차 로마를 거쳐 스페인에까지 가서 전도할 계획을 세웠던지라(로마 15,22-29), 미리 로마 교우들에게자신을 소개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필립비 교회로 북상하여 과월절 축제를 지내고 네아폴리스(지금의 카발라)에서 배를 타고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에 이르러 이레 동안 그곳 교우들과 함께 지냈다(사도 20,6-12).
바울로는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에서 아쏘(지금의 베람칼레)까지 67킬로미터는 걸어갔다.
아쏘에서 다시 배를 타고 에페소를 지나쳐 밀레도스 항구에 정박했다(사도 20,13-16).





(Assos: Acropolis)





밀레도스[Miletus (Balat)]



바울로는 북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을 밀레도스로 불러 고별 연설을 하였다(사도 20,17-38).








(Theater)

역사상 맨 첫 번째 그리스계 철학자 탈레스(Thales 기원전650-546)가 이 고장 출신이었다.
그는 기원전 522년에 있었던 일식을 예고했고 이집트 대형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했다.
그는 우주의 기본 원소를 물이라고 했고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고 보았다. 기원전 546년 다리우스 대왕이이끈 페르시아군이 밀레도스를 점령했다. 페르시아의 압제와 중과세에 시달리다 못해 기원전 500년밀레도스는 이오니아 지역의 다른 열한 도시와 동맹(이오니아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켰으나,기원전 494년 페르시아군에게 패하여 초토화되었다.





(Ionic Stoa)


기원전 450년 이 도시의 건축가 힙포다무스가 도시 계획을 세워 바둑판 모양의 신도시를 건설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에 진군하자 동족이라 하여 환영하였다.
밀레도스는 바울로 시대에만 해도 번창한 항구도시였으나 뷔익 멘데레스강의 퇴적작용 때문에 차츰차츰항구 기능을 잃어 지금은 지중해에서 한참 떨어진 허허벌판이 되었다. 에페소의 경우와 같은 현상이다.
밀레도스의 유적으로는 입구의 반원형 극장, 경기장, 파우스티나 목욕탕, 항구 표석이 돋보인다.





(Delphinium)


밀레도스에서 남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디딤에는 밀레도스 시민들이 세운 아폴로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 사모스섬의 헤라 신전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큰 신전이었고, 그리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로 신전의 신탁과 겨룰 만큼 영험한 신탁을 주는 신전으로소문났었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페르시아 통치 때 밀레도스 시민들이 건설했는데 페르시아군이이오니아 동맹 반란을 진압하면서 파괴했다. 지금의 신전은 알렉산더 대왕의 명으로 재건한 것인데아직껏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Odeum:음악당, 극장)




(Agora:집회장, 광장)





밀레도스에서 프톨레마이스로



바울로는 밀레도스에서 에페소 교우들과 작별하고 출항, 터키 연안 여러 섬들을 끼고 항진하여레바논의 띠로에 입항했다. 여기에도 교우들이 있어 바울로는 이레 동안 신세를 졌다.





(Tyre harbour)




(Palaestra: ancient Greek wrestling school)



이 띠로 지방에는 예수께서도 잠시 들르신 적이 있다(마르 7,24.31).
바울로는 띠로에서 남쪽으로 45킬로미터 떨어진 프톨레마이스(지금의 이스라엘 아코)에 입항하여항해를 마쳤는데 프톨레마이스 교우들과는 하루만 지냈다(사도 21,1-7).





(Ptolemais Byzantine Cistern: 물탱크)




(Ptolemais_Villa_of_Columns)


역사적으로 프톨레마이스는 십자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여기서 1291년 십자군이 이집트 마멜루크 이슬람군의 공격을 받아 두 달 동안 힘겹게 버티다가 마침내 패전함으로써 십자군전쟁은 아주 막을 내렸다. 하이파만 북쪽에 아코항이 있고, 하이파만 남쪽에 하이파항이 있다. 두 항국 간의 거리는 22킬로미터이고 하이파 항구에서부터 가르멜 산맥이 시작된다.




(View from Mt. Carmel of the Shrine of the Báb and the city)



가르멜산


가르멜산은 하이파(Heifa)에서 시작하여 동남쪽으로 20킬로미터쯤 내뻗은 산줄기 전체를 말한다.
하이파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털아비브와 예루살렘 다음으로 주민 수가 많고, 가장 중요한 군사항구이다.
최고봉 해발 552미터. 이스라엘 산들이 대체로 민둥성이인데 비해서 가르멜산만은 구약 시대 때부터수목이 울창했다(이사 33,9; 35,2; 예레 50,19; 나훔 1,4; 아가 7,6).






이 산 위에서 야훼를 섬기는 엘리야 예언자와 바알 신을 섬기는 예언자 450명이 사생결단을 했는데그 사연은 이렇다.

이스라엘 임금 아합(기원전 875-853 재위)은 풍산신 바알을 열성으로 섬기는 시돈 공주 이세벨과 혼인하고그 영향을 받아 바알 숭배를 강요했다(1열왕 16,29-18,15). 이에 엘리야는 바알 숭배 본거지인 가르멜산위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사생결단을 내기로 작심하고 왕더러 저들을 가르멜산으로 불러모으라고 하였다.






먼저 바알 예언자들이 제단을 쌓고 제물을 마련하여 온 정성을 쏟았으나 아무런 영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엘리야 차례가 되어 야훼께 간구했더니 "야훼의 불길이 내려와 제물과 함께 나무와 돌과 흙을 모두태웠다."  야훼께서 참 신으로서의 위력을 드러내신 것이다.
이에 엘리야는 야훼께로 돌아선 이스라엘 백성의 도움을 받아 바알 예언자들을 가르멜산 아래에 있는키손 개울로 끌고 가서 모조리 죽였다(1열왕 18,16-40).
아랍어로 무흐라카(Muhraka, 해발 482m)라고 하는 봉우리에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여 세운 '엘리야의 제사 가르멘 수도원'이 있고, 엘리야 석상이 우뚝 서 있다.

그런가 하면 하이파에 인접한 가르멜산 위에도 '바다의 별 가르멜 수도원'이 있는데, 이 수도원 안에엘리야가 살았다는 동굴이 있다.
또한 여기서 3킬로미터 떨어진 바트 갈림 근처에도 엘리야가 살았다는 동굴이 있다.







가이사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사도 바울로는 프톨레마이스(지금의 아코)에서 교우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서 남쪽으로 약 60킬로미터떨어진 가이사리아 항구에 이르러,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인 필립보의 집에서 여러 날 묵었다.
가이사리아에서 100킬로미터 남짓 걸어서 마침내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를 찾아보았더니 야고보는 바울로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바울로가 지중해 동부 여러 나라에서 전도하면서 유대교를 헐뜯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그냥 있다가는유대인들로부터 큰 봉변을 당할 우려가 있다. 그러니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니고 실은 바울로가 열심한유대인이라는 쇼를 할 필요가 있다. 마침 나지르 서약(민수 6,2-5. 13-21)을 이행하고도 가세가 곤궁해서서약을 마무리하는 제사를 바치지 못하고 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네 명 있으니 바울로가 이들의제수 비용을 대는 게 좋겠다'고.

바울로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레 동안 정결례를 행하고(민수 19,12)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갔다가에페소 주변 아시아 속주에서 순례 온 유대인들에게 붙잡혔다.

이들의 주장인즉, 바울로가 사방에서 우대교를 비방했을뿐더러, 이방인들을 성전 이스라엘 구역으로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성전 바깥 마당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으나, 성전 건물과제단 주변 이스라엘 구역에는 오직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 구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열세 개 있었는데 그 상인방 위에 그리스어 또는 라틴어로"이방인들에게는 성전 접근을 엄격히 금한다. 이 규정을 어기면 자동적으로 사형을 자초할 것이다"라는글귀를 돌에 새겨놓았다(요세푸스, 유대전쟁 5권).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는 그리스어로 경고문을 새긴 온전한 석판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깨어진 석판 단편이 예루살렘 록펠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에페소 주면 아시아 속주에서 순례 온 유대인들이 바울로를 잡아놓고 규탄하자 성전에 있던 동족들이 덩달아 바울로에게 매를 가했다. 다행히 성전 북부 안토니아 병영에 주둔한 로마 군인들이 이 광경를 보고출동하여 바울로를 구해주었다. 이 일련의 사건은 사도행전 21장 17-40절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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