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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18):바울로의 제3차 전도여행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341
작성일 09-06-10 12:00
   바울로의 제3차 전도여행 ♡ 









문이 활짝 열렸다는 에페소



터키 서남쪽 지중해안 이즈미르 항구 도시에서 남쪽으로 74킬로미터 지점에 에페소가 있다.
바울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으나 카이스트로스강을 타고 흙이 씻겨내려와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 못한다. 에페소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입성으로 해방되었다.

기원전 133년 베르가모 왕국의 마지막 왕 앗탈로스 3세가 왕국을 로마에 바칠 때 에페소도 함께바쳤다.
기원전 129년 로마는 에페소를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 삼았다. 당시 시민은 약 20만 명. 기원전 88년 시민들이 로마의 압제에 반기를 들어 라틴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모조리 죽이자, 로마 장군 실라(sylla)가 에페소를 초토화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원전 27년 - 서기 14년) 때부터 재건된 이 도시는 아시아 속주의 정치, 상업,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Temple Hadrian)


바울로는 제2차 전도여행(50-52년경) 때 고린토 교회를 창립한 다음, 브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데리고 고린토 동쪽 외항 겐크레아에서 배를 타고 에페소에 상륙하여 거기에 부부를 남겨두고 자신은 가이사리아와 예루살렘을 거쳐 전도 출발지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갔다(사도 18,18-22). 그 무렵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명설교가 아폴로가 에페소에 이어 고린토에서 전도했다(사도 18,24-28).

53년경 바울로는 제3차 전도여행(53-58년경)을 떠나, 우선 터키 중부 갈라디아 지방 교회들과그 남쪽 프리기아 지방 교회들(데르베, 리스트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을 돌아보고 나서 에페소로 내려가 무려 27개월 가까이 전도했다(사도 19,8.10;20,31 참조).
에페소에서는 "문이 활짝 열렸다"고 바울로 자신이 말할 만큼 전도가 잘 되었다(1고린 16,9). 또한 제자 에바프라를 450여 리 동쪽으로 보내어 골로사이, 라오디게이아, 히에라폴리스에도 교회들을 세웠다(골로 4,12-16).





(The Ephesus library)



바울로는 에페소에서 편지를 여러 편 썼다.

. 갈라디아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 고린토 교회로는 편지 세 통을 보냈는데, 첫째 편지는 분실되었고(1고린 5,9.11), 둘째 편지   (지금의 고린토 전서)는   고스란히 전해오고, 셋째 편지(눈물 편지 2고린 2,4;7,8)는 일부만 전해온다(지금의 고린토 후 서 10-13장)

. 바울로는 에페소 주둔 로마군 부대에 갇혀 있던 동안에 에게해 건너 필립비 교우들에게, 그리고 골로사이 교우 필레몬에게 각각 옥중서한을 써 보냈다.

. 바울로는 감옥에서 석방되너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고린토 교회로 넷째 서한을 써 보냈다
  (2고린 2,12-13;7,5-7; 사도20,1).
곧 지금의 고린토 후서 1-9장이다.





(Ephesus street)


에페소에는 옛 시내와 아야솔루크 요새 중간 지점에 풍요와 다신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라고 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이 중 하나라는 평판이 있었고, 온 아시아에서 순례객들이 모여들었다. 에페소 은장이들은 아르테미스 여신상 모형을 만들어 순례객들에게 팔아서 짭짭한 수입을 올였다. 그런데 바울로의 활발한 전도로 그들의 수입이 줄어들자 은장이 대표 데메드리오가 동료 은장이들과 시민들을 선동하니, 시민들이 바울로의 일행 가이오와 아리스다르코를 노천 극장으로 끌고 가서 난동을 피웠다(사도 19,21-40).
바울로는 에페소 로마군 병영에서 옥고를 치렀는데, 로마군은 항구 동쪽 산에 주둔했다는 설이 있다.

58년경 바울로는 고린토 교회에서 로마서를 집필한 다음 필립비 교회에서 과월절을 보내고(사도 20,6) 돌아오는 길에 밀레도스 항구에 들러, 거기서 북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와서 감동적인 작별인사를 했다(사도 20,17-38)고 한다.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원전 7세기에 창건되고 기원전 6세기, 기원전 4세기에 재건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재건된 신전은 길이 105미터, 넓이 55평방 미터로 아릅답기 그지없어 당시 세계에선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다. 이 신전은 서기 265년 또다시 재건되었으나 곧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로 지위를 굳힘으로써 인기를 잃고 말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에페소에 성 요한 성당을 지을 때,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허물어 건축 자재로 사용함 으로써 신전은 깡그리 파괴되었다. 지금은 비가 오면 늪이 되는 저지대에 돌기둥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아르테미스: 다산의 여신)


에페소 시민들은 본디 아나톨리아 토속 여신, 곧 풍요와 다산의 여신 퀴벨레를 섬겼다.
그러다가 그리스인들의 영향을 받아 언제부터인가 그리스의 풍요와 다산 여신 아르테미스를 섬기게 되었다.
에페소의 아르테미스가 퀴벨레를 승계한 것이다. 그 증거로 에페소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양팔 위에 여신 퀴벨레의 애완동물인 사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들수 있다.

여신 양팔에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고, 가슴에는 유방 같은 것들이 주절주절 달려 있는데 실은 유방이 아니고 황소 불알들이다. 이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가슴 아래쪽에는 사자, 황소 등이 셋씩 새겨져 있다.
아르테미스는 동물들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것이다.






에페소 뒷산 피온산 기슭에 자리잡은 에페소의 노천 극장은 터키 전역에 산재한 노천 극장들 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다. 무려 2만 4천여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이다. 이 극장은 클라우디우스 치세 때(서기 34-41년) 짓기 시작해서 셉티무스 세베루스 치세 때(193-211) 완공되었다고 한다.
늘 그렇듯이 이 극장도 관중석, 무대, 그리고 둘 사이에 있는 반원형 합창대석으로 짜여져 있다.

바울로의 일행 가이오와 아리스다르코가 은장이 데메드리오의 사주로 모인 은장이들과 시민들로부터 곤욕을 치른 곳이 바로 이 노천 극장이었다(사도 19,23-40). 이 극장은 베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히에라폴리스 노천 극장들만큼 잘 보존되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훌륭하게 보수해놓았다.





(House of the Virgin, Ephesus)




(Prayer wall on the way to the House of the Virgin)


 


(Interior of the House of the Virgin)

노천 극장에서 아르키디안 도로를 따라 항구 쪽으로 100여 미터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5세기 초엽에 지은 성모성당이 있다. 그 터는 성모께서 요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에페소로 옮겨와 살던 곳이라는전설이 전해왔는데,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은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 성당은 교회 사상 성모께 봉헌한 맨 첫 번째 성당이다.

오늘날 순례객이 에페소를 찾아가면 에페소 앞산 남서쪽 능선 아래 지점에 성모마리아의 집이라는 게 있다.
이곳은 사시사철 순례객들로 들끓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모께서 여기서 사시다가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고 믿어서 찾아오고, 무슬림은 자기네 나름대로 성모님을 무척 존경해서 순례를 오기 때문이다.

여기 성모 마리아의 집이 발견된 경위는 매우 기이하다. 독일 태생의 가타리나 엠메릭크라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녀가 전신마비로 마지막 12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자주 예수님과 성모님 발현을 보곤 하였다.
독일 가톨릭 시인 브렌타노는 수녀에게서 성모님 발현 이야기를 채록하여 1852년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성모님의 집과 주변 풍경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1878년 프랑스어 번역판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자를 구해 읽은 융(Yung)이라는 신부와 그 일행이 1891년 에페소 주변 산야에서 책 내용과 맞는 집과 풍경을 찾다가, 에페소 앞산 남서쪽 능선 아래 지점(속칭 파나야 카풀루)이 책 내용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듬해 1892년에는 당시 이즈미르 대교구 티모니 대주교가 이곳에서 미사를 드림으로써 순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6-7세기 비잔틴 시대 집 주춧돌만 남아 있었는데 이탈리아 카푸친 수도회에서 1950년 그 주춧돌 위에다 현재의 건물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가 성모님 집터였느냐 아니야 하는 논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61년 요한 23세 교황이 그 집에서 정기적으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허락하고, 1967년 바울로 6세 교황이 참배하고, 1979년 요한 바울로 2세 교황이 참배한 다음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믿거나 말거나 각자 알아서 처신할 일이다.





(St. John 교회)




(The Tomb of St. John in St. John's Basilica)

예수께서는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 오후 예루살렘 북쪽 성밖 골고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평소 각별히 아끼시던 애제자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맡기셨다고 한다요한 19,26-27).
애제자는 별명이고 그 실명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선가 애제자는 요한이라는 전설이 생겨났고, 또한 애제자 요한이 성모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에페소로 옮겨와서 처음에는 에페소 시내 성모성당터에, 나중에는 에페소 앞산 남서쪽 능선 아래쪽에 자리잡고 살았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나아가 요한은 에페소에서 오래 오래 살다가 선종하여, 에페소 뒷산 너머에 있는 아야솔루크 요새 남쪽에 묻혔다는 전설이 또 생겨났다. 전설에 전설이 새끼를 쳤다 하겠다.

요한이 묻힌 무덤 위에다 4세기에 목조 성당을 지었고, 유스티니아누스 치세 때(527-565) 돌과 벽돌로 거대한 대성당을 세웠다. 십자형 성당 한복판, 대리석 기둥 네 개가 서 있는 곳이 요한 사도의 무덤이라고 한다.
에페소, 베르가모, 필라델피아 등지에는 비잔틴 시대에 요한 성당이 세워진 데 반하여 바울로 성당은 전혀 없다.
이는 아시아 지방에서 바울로보다 요한의 영향력이 컸다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목욕탕)


요한계 교회

53-58년경에 에페소는 바울로의 가장 활발한 전도 무대였다. 그러나 요한계 문헌이 집필된 100년경 에페소를 비롯한 아시아 교회들은 요한계 교회 일색이 되었다. 일례로 요한 묵시록 필자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페소,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이아)에 써 보낸 편지들을 들 수 있다(묵시 2-3장)

요한 서한집에서는 체린투시식 '분리 그리스도론' 영지주의와 '예수 가현설' 영지주의를 대적하여 혈투를 벌이는데, 그 역사적 배경은 아무래도 100년경의 아시아라 하겠다.
다음은 이 요한 서한집 이해를 돕는 배경 이야기 몇 편이다.

주님의 제자 요한이 에페소의 공중 목욕탕에서, 예수와 그리스도는 서로 다르다는 '분리 그리스도론'을 내세운 영지주의자 체린투스를 우연히 만나자 그와 상종하지 않으려고 달아났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우스는 110년경 안티오키아에서 체포되어 필라델피아, 스미르나, 트로아스,필립비를 거쳐 로마로 압송되던 도중에 스미르나에서 에페소 교회, 막네시아 교회, 트랄레스 교회, 로마 교회 앞으로 편지를 썼다. 이어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에 이르러서는 필라델피아 교회, 스미르나 교회, 스미르나 교회의 주교 폴리카르푸스 앞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 그중 트랄레스 서간 9-10장과 스미르나 서간 1-6장에서는, '예수 가현설'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을 조심하라고 훈계했다.

아야솔루크 요새 아래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지은 성요한 대성당이 있는 것도 유의할 일이다.
전설이기는 하나, 사도 요한이 파트모스섬에서 유배생활을 마치고 에페소로 돌아와 100년경에 죽어 묻힌 묘소 위에다 이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trajan-f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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