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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17):바울로의 제2차 전도여행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374
작성일 09-06-10 11:50
♡   눈물을 흘리며 고린토에 편지를 쓰다 ♡ 








(The Corinth Canal:고린토 운하)




(ancient city center of Corinth)



기원전 146년 로마군은 고린토를 점령하고 초토화시켰다.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체사르는 고린토를 로마인들이 사는 식민읍으로 재건했다.

마침내 기원전 27년 고린토은 아카이아(지금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속주의 총독부로 승격되었다.
당시 고린토는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동방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사는 인종 박람회장과 같은 도시였다. 시민 수는 13만 명을 넘은 것 같다.

자연히 종교도 매우 다양해서 마치 종교 전시장 같았다. 우선 그리스인들은 미남신 아폴로, 사랑의 미녀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예술의 여신 아테나, 운명의 여신 튀케, 치유의 신 아스클레페오스, 지하의 남신에게 강간당한 코레, 이스무스에 신전을 지닌 바다의 신 포세이돈 등을 섬겼다.

로마인들은 율리우스 체사르,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를 신격화하여 섬겼는데, 고린토 서쪽 박물관 옆에 그들을 모신 신전이 있었다.










(Greek Orthodox Cathedral of St. Paul the Apostle)

고린토인들은 이집트 치유의 신 사라피스, 이집트 바다의 여신 이시스도 섬겼다.
유대인들은 물론 유대교를 믿었다. 그리스어로 '히브리인들의 회당' 이라고 새긴 흰 대리석이 레카이온 중앙통에서 발굴되었는데, 이는 유대교 회당 출입문 위에 놓인 상인방 돌이었을 것이다.
연대상으로 4세기의 것으로 보이지만, 바울로 시대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이민와서 살았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 볼 때, 바울로가 전도한 고린토는 종교 다원 사회였다고 하겠다.

일상 통용어는 그리스어였고 행정기관에선 라틴어도 사용했다. 고린토는 교통과 상업이 발달해서 경제적 으로는 윤택했으나, 흔히 항구도시가 그렇듯이 문화적으로는 천박하고 윤리적으로는 퇴폐했다.
기원전 146년 이전의 고린토에 관한 전설이기는 하나, 고린토 뒷산 꼭대기에 있던 아프로디테 여신전에는 신창(神娼) 1천여 명이 득실거렸다고 한다. 빈부의 격차는 심했는데 그리스도인들 절대 다수는 빈민층에 속했다. 그리스. 로마인들이 그렇듯이 고린토인들도 운동 경기를 즐겨, 옛 고린토에서 아테네 쪽으로 삼십 리 떨어진 이스무스에서 격년으로 범헬라 운동회를 열었다.





바울로는 제2차 전도여행 때(50-52년경) 오늘날의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 네 개의 교회를 세웠다.
우선 그리스 북부 지역 마케도니아 속주에 필립비 교회, 데살로니카 교회, 베레아 교회를 창설했다.
바울로는 실라와 디모테오를 베레아에 남겨두고 베레아 교우 일행과 더불어 뱃길로 510킬로미터를 남행하여 문화도시 아테네에서 전도했으나 실패하여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사도 17,14-34).

실라와 디모테오가 아테네로 내려오자 바울로는 데살로니카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편 그들을 재교육하려는 뜻으로 디모테오를 데살로니카로 파견하고(1데살 3,1-5), 바울로 자신은 그리스 남부 지역 아카이아 속주의 수도 고린토로 내려갔다. 이때 실라도 동행한 것 같다.

바울로는 아테네에서 서남쪽으로 89킬로미커 떨어진 고린토로 내려가 무려 18개월간 머물면서 큰 교회를 세웠다(사도 18,1-17). 바울로는 늘 그랬듯이 고린토에서도 손수 일을 해서 생계비와 전도비를 벌었다.
단, 필립비 교우들이 보낸 물질적 도움만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바울로는 마침 로마에서 고린토로 쫒겨온 유대계 그리스도인 부부 아퀼라와 그리스킬라를 만나 그 집에 얹혀 살면서 부부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한편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전도했다.
49-50년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유대계 그리스도인 부부 아퀼라와 브리스킬라는 고린토로 피신해 살던 중 바울로를 만나 함께 생활하고 일하면서 고린토 교회 창립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후 이 부부는 바울로를 따라 에페소에서도 전도했다(사도 18,18-28). 이들은 에페소에서도 (1고린 16,19), 나중에는 로마에서도(로마 16,3-5) 자기네 집에 그리스도인들을 모았다. 또한 바울로는 그 무렵 유대교에 동조하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 디디오 유스도의 집에 기거하면서 주로 이방인들을 상대로 전도했다
(사도 18,6-7). 디모테오가 데살로니카에서 고린토로 내려와서 희소식을 전하자(1데살 3,6) 바울로는 데살로니카 교우들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냈으니, 이것이 곧 데살로니카 전서이다.
이는 바울로의 서간집 중에서뿐 아니라 신약성서를 통틀어 가장 먼저 씌어진 글이다.


고린토 전도 말엽 유대인들이 바울로를 아카이아 총독 갈리오의 법정에 끌고 가서 그를 종교 이단자로 고발하였다. 그러나 당대 로마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로서 네로를 가르친 세네카의 형인 갈리오 총독은 매우 현명해서 종교 문제에 관한 소송을 기각했다(사도 18,12-17).

고린토 유적지에 가보면 레카이온 중앙통 남쪽 끝에 당시 대중 연설도 하고 공개 재판도 한 연단 축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아울러 이 고발 사건은 바울로의 연표를 작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델피에서 발굴된 금석문에 따르면 갈리오는 51-52년에 아카이아 총독으로 재직했다.

이 무렵에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교회 창립을 마무리하고, 아퀼라와 브리스킬라를 데리고 동쪽 외항 겐크레아에서 승선하겨 에페소에 갔다가, 이곳에서 이 부부와 작별하고 자신은 가이사리아, 예수살렘을 거친 다음, 출발지인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갔다(사도 18,18-22).


 


(Bema: 연단 축대인 베마. 52년경 갈리오 총독이 바울로를 심문한 곳)


고린토 교우들에게 보낸 서간


현재의 신약성서에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오직 고린토 전. 후서 두 편만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더 많은 편지들을 써 보냈다. 바울로는 51-52년경 고린토를 떠난 다음, 3차 전도여행에 올라 54년경 에페소에서 활발히 전도하던 중(1고린 16,8-9) 고린토인들에게 편지를 발송한 바 있다.
이것이 오늘날 신약성서에 들어 있는 고린토 전서이다.

그러나 바울로가 고린토 전서에 앞서 고린토인들에게 또 한 편의 편지를 써 보냈다고 스스로 확언한다
(1고린 5,9). 불행히도 이 편지는 전해오지 않는다. 고린토 전서 5장 9절에 따르면 사도 바울로는 그 편지 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교우들에게 지시했다.

이제 바울로가 54년경 에페소에서 고린토 교회로 보낸 두 번째 편지, 곧 지금의 고린토 전서를 써 보낸 까닭을 살필 차례이다. 바울로는 두 갈래 경로로 고린토 교우들의 최근 소식들을 들었다.
우선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에페소에 와서, 고린토 신도들이 네 파로 갈라졌다는 불길한 소식을 전했다
(1고린 1,11-17).
클로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지만, 고린토 교회의 유력한 여교우임에는 틀림없다. 또 한 가지 소식통으로는, 고린토 교우들이 결혼과 독신 문제에 관한 질의서를 만들어서 에페소에 있던 바울로에게 보냈던 것이다(1고린 7장).

이 질의서를 전하고, 그에 대한 답서로 지금의 고린토 전서를 전서를 받아 가지고 돌아간 이들이고린토 신도들의 심부름꾼들인 스테파나와 포르두나도와 아카이고였다(1고린 16,17).
이처럼 바울로는 인편 또는 서면으로 고린토 교회의 여러가지 소식들을 접하고 사목적 지침들을하달했으니, 이것이 곧 고린토 전서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서간에서 서기 50년대 초반 한 지역교회의 생생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고, 아울러 위대한 사도의 사목적 배려을 눈여겨볼 수 있다.

바울로가 고린토 전서를 보낸 다음에 바울로는 예루살렘 교우들을 위한 모금을 독려코자 디도와협조자 한 사람을 고린토 교회로 파견하였다(2고린 12,17-18). 그렇지만 고린토 교우들이 저들에게 순종하기는 커녕 외부에서 들어와 바울로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한 유대계 그리스도교 전도사들의 사주를 받은 나머지 바울로의 사도직을 부정하기에 이른 것 같다.

바울로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몸소 고린토 교회로 찾아갔다.
고린토 교회 창립 때의 방문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2고린 13,2). 그러나 이미 사태는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고린토 신도들 대부분은 바울로의 적수들에게 동조했고, 남자 교우 한 사람은 바울로에게 공개적으로 심한 모욕을 가했다(2고린 2,5-11; 7,12; 12,20-21 참조)

바울로는 에페소로 되돌아와서 "몹시 괴롭고 마음이 답답하여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린토 교우들에게 비통한 편지를 써 보냈다. 아마도 디도가 이 편지 심부름을 했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눈물 편지'라고 하는데,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로 보낸 세 번째 편지이다.
적수들에 대항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변하하고 고린토 교우들의 맹성을 촉구하는 눈물겨운 서간이다.



디도를 시켜 고린토 교우들에게 '눈물 편지'를 띄우고 난 다음 바울로는 에페소를 떠나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를 거쳐 그리스 북부 지역 마케도니아로 건너갔다.
거기서 사도는 노심초사 디도가 고린토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렸다(2고린 2,12-13'7,5)

마침내 디도가 와서 뜻밖의 희소식을 전했다. 고린토 교우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울로와 화해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요, 전에 바울로에게 불의를 행한 무뢰한을 교우들이 처벌했다는 것이다.
이에 바울로는 반갑고 고마워 고린토 교회로 네 번째 편지(화해 편지)를 띄웠으니, 곧 지금의 고린토 후서1-9장이다. 때는 57년경. 디도는 형제 두 명과 함께 이 편지를 지니고 마케도니아에서 고린토로 내려가서 예루살렘 교우들을 위해 모금도 하고(2고린 8-9장; 로마 15,25-31), 바울로의 방문도 준비했다.

곧이어 바울로도 고린토에 당도하여 석 달 가량 모처럼 조용히 지내던 기회에(사도 20,3) 자신의신앙과 신학을  총 정리하여 방대한 로마서를 집필하였다. 지금의 고린토 후서에서 바울로는 모처럼 신상발언을 많이 한다.
특히, 고린토 교회에 침입하여 바울로의 사도직을 부정한 적수들을 상대로 일대 논전을 벌이는 10-13장 에서 자신의 과거행적과 현재의 심경을 거침없이 토로한다. 따라서 고린토 후서야말로 바울로의 인간성과 사도관을 살피는 데 더없이 좋은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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