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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1): 바울로의 출생 및 개심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77
작성일 09-04-15 15:49
♡ 바울로의 출생 및 개심 ♡  
 
위대한 여행 -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를 연재하며...




초세기에 생존했던 인물로 세계 여행의 선구자인 바울로.
그의 일생은 시리아의 고도 다마스커스에서 뒤바뀌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체험을 했길래?

그 체험 이후 그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에서 그리스도교 전파자로 탈바꿈해, 세 차례에 걸쳐
광범위한 전도여행을 하고 마침내는 그 때문에 수인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압송
되기까지 한다. 
그의 그런 여행으로 인해 그리스도교가 세계적 종교로 탈바꿈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지중해 연안국들은 그리스도교 신자건 아니건 모든 이에게 의미있는 장소가 된다.

'바오로 해'를 맞이하여 직접 여행은 가지 못하지만 사진으로나마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간접적으로 우리도 전도여행을 하면 어떨까요?
이 글은 정양모 신부님의 책 '위대한 여행'을 참고하였습니다.





바울로의 출생연도

33년경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맨 처음으로 스테파노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할 때, "사울로라는 
젊은이"가 스테파노를 돌로 쳐죽이던 사람들의 겉옷을 맡았다고 한다(사도 7,58).
그리고 55년경 에페소에서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로는 노인으로 자처한다(필레 1,9)
바울로의 출생 연도 또는 나이를 가늠케 하는 정보는 이 두 구절뿐인데, 젊은이 및 노인의
기준이 매우 모호한 까닭에 이런 표현들을 근거로 바울로의 출생 연도를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계에서는 흔히 서기 5-10년 사이에 출생했으리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역시
추정에 불과하다.

출생지 다르소는 지중해로 흐르는 치두누스강 양편에 자리잡은 도시로서 지중해에서 16킬로미터 거리.
바울로는 다르소에서 태어났다(사도 9,11; 21,39; 22,3).
현재 주민은 10만 명 남짓하지만 옛날에는 문화. 정치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치드누스 강)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치드누스강에서 목욕하다가 익사할 뻔했다. 대왕 사후에 다르소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일례로 스토아 학파의 유명한 철인들이 여기서 활약했던 것이다. 기원전 64년 로마에 병합되었고, 기원전 57년에는 길기 리아 속주의 수도로 승격되었다. 다르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이민와서 정착했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바울로는 자연스레 헬라어와 셈족어, 헬라 문화와 셈족 문화를 익힐 수 있었다. 다르소에는 바울로 시대의 유적이 거의 없다. 고작 로마시대의 성문이 남아 있는데, 흔히 클레오파트라 성문이라고 부른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와 함께 다르소에서 신혼여행을 즐겼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바울로의 가족 바울로는 자신의 출생, 할례, 성장, 처신 등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독실한 유대교 가정 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으며 철저한 바리사이로 처신했다. 바울로는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자처하는데, 당시 제관이나 레위가 아닌 평신도 유대인들은 유대 지파 아니면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자처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이를 아예 부수어 없애려 했습니다. 나는 또한 유대교를 신봉하는 일에 있어서 내 동족 가운데서 같은 나이 또래의 많은 이들보다 훨씬 더 앞서가고 있었으며 내 조상 때부터의 전통에는 특별히 더욱 열심이었습니다."(갈라 1,13-14) "나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율법을 지키는 바리사이로서 교회를 열렬히 박해했으며, 율법에 의한 의로움에 있어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필립 3,5-6) "나만 해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났으며 베냐민 지파에 속합니다."(로마 11,1) 특기할 사항은 그의 부모가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바울로는 태생 로마 시민이었다는 사실이다(사도 16,37-38; 22,25-29; 23,27). 카라칼라 황제가 212년 로마 제국의 모든 자유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전에는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지닌 이들은 많지 않았다. 사도 행전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힐렐율사의 손자이며 당대 최고의 율사였던 가믈리엘 1세 아래서 율법 공부를 했다고 한다(사도 22,3; 26,4). 그러나 이는 루가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연속성을 강조코자 만들어내 허구라는 설이 득세하고 있다. 사실 바울로가 히브리어 성서를 안 흔적이 없고, 그가 성서을 인용할 때 늘 70인역을 인용한 사실로 미루어 이 학설은 설득력이 있다. 바울로는 고린토 전서를 집필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밝혀 '홀몸'이라고 한다(1고린 7,7-8; 9,5-6). 이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일 수도 있고, 결혼했지만 상처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이 름 바울로는 친서에서 자신을 일컬어 언제나 "바울로"라고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 58절-13장 7절에서는 "사울로"라고만 하다가, 13장 9절에서는 "사울로, 일명 바울로"라고 동일시한 다음, 13장 13절-28장 30절에서는 "바울로"라고만 한다.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에 세 차례(9,1-19; 22,3-21; 26,0-18) 나오는 바울로의 개심기에서는 글 일컬어 "사울"이라고 한다. 이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요 이스라엘 초대 임금인 사울에게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울'을 그리스어로 음역하면 '사울로'가 된다. 이와는 대조적을 '바울로'는 로마. 그리스식 이름이다. 개 심 33년경 바울로는 다마스커스 교회를 박해하러 가던 도중에 예수님을 뵙고 그리스도인이자 사도가 되었다. 예수를 바라보는 그이 관점이 돌변했던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 분을 대하는 시각이 한순간에 달라졌던 것이다. 개심이야말로 바울로의 앞날을 좌우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신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싫어하고 예수를 주님으로 선포하는데 전심전력한 사도인지라, 그 중차대한 개심 사건조차 그저 몇 차례에 걸쳐 간결하게 언급 또는 암시할 뿐이다. 사도행전의 필자인 루가는 세 번에 걸쳐 자상하게 바둘로의 개심담을 소개했다. 그러나 세 가지 개심담은 실은 바울로 자신의 체험담이 아니고 루가가 시청각 교육자적 관점에서 바울로의 개심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 유명한 도시 다르소(tarsus) 바울로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개심 후 삼 년이 지난 36년경에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와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를 만나본 다음(갈라 1,17-19), 고향 다르소로 돌아가 약 8년 동안 지냈다. 44년경, 그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의 일을 돌보던 바르나바의 초빙을 받아 안티오키아 로 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의 신도들과 함께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제 2차 여행 때(50-52년경)도 바울로는 고행 다르소를 거쳐갔음에 틀림없다. 제 3차 전도여행 때(53-58년경)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바오로 집터에 조성되어 있는 바오로 우물 바울로는 세 차례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때 바울로가 로마의 파견대장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 "나는 길기리아의 다르소 출신 유대인으로 그 유명한 도시의 시민입니다"라고 했다(사도 21,39)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다르소를 관통하는 치드누스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익사할 뻔했다. 타우루스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몹시 찬데 그걸 모르고 들어갔다가 심장마비 증세가 일어났다던가? 기원전 50년에는 로마의 달변가 키케로가 길리기아 총독으로 이곳에 부임했다. 기원전 41년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장군이 내방해 면세 혜택을 베풀었는데, 이때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로 분장하고 치드누스강으로 배를 타고 와서 안토니우스 장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다. (TarsusGateCleopatra) 다르소는 641년부터 아랍인들의 침공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쇠퇴했다. 지금 시민의 수는 10여만 명 정도이다. 불행히도 이곳에서 바울로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도심에 '바울로의 성문'(일명 클레오파트라 성문)이라는 게 있으나, 이는 바울로 시대 이후에 세운 로마식 성문이다. (다르소의 사도바울 기념교회) 관련 성서구절: 사도행전 21장 39절 "나는 길리기아의 다르소 출신 유대인으로서 결코 초라하지 않은 도시의 시민입니다."
관리자
세잎 클로버 형제님께서 보내주신 자료입니다.
09-04-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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